이번 포스트에서는 2016년에 Neha Narula(미래 통화 학자)이 테드에서 강연한 "The Future of money"에 제 생각을 덧 데어 간략히 정리해 봤습니다. 기초적인 내용지만 왜 디지털 화폐의 사용이 필연적(Inevitable)이며 공부가 필요한지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알려줍니다.
1900년대 초반 미크로네시아에 있었던 '얍' 문화 공동체는 현대의 시점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통화를 사용했습니다. 얍의 사람들은 '라이스톤(Rai stones)'이라 불리는 아주 무겁고 거대한 석회암 판으로 만들어진 돌을 사용하여 화폐로 사용했습니다. 얍의 사람들은 실제로 이 돌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돌의 어느 부분을 누가 소유했는지를 기록해서 지분 증명을 통해 물건을 매매했습니다. 라이스톤은 지름 12피트에 무게가 4톤에 달해서 옮겨지지 않고 보통 얍 공동체 마을 곳곳의 자리에 한번 놓아지면 화폐의 기능을 유지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한 번은 라이스톤을 바다를 통해 옮기던 선원들이 스톤을 바다에 빠트리는 사고가 일어나게 됩니다. 선원들은 얍 공동체 본토로 돌아와 이 사실을 알렸지만 얍 주민 들은 여전히 그 스톤이 얍공동체의 화폐로 통용된다고 동의합니다. 이미 스톤에대한 지분 증명이 되어있기에 어느 장소에 있던 상관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사실 이런 화폐시스템은 미크로네시아의 작은 부족에서만 유지되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같은 개념은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32년에 프랑스 은행이 미국에 자신들의 달러를 금으로 바꾸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 산더미 같은 금을 미국에서 프랑스로 옮기는 데는 여러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에 금으로 바꾼 금 더미에 프랑스 소유 지분 증명이란 라벨을 붙여 기록합니다. 이로써 프랑스가 그 금 더미의 소유주인걸 모두가 동의하게 됩니다. 라이스톤의 가치부여 방식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을 통해 우리는 물건과 돈의 가치는 결국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과거부터 현대까지 모든 물건은 그 자체로 가치가 부여된 것이 아닌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모두가 동의함으로써 가치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화폐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폐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의 합의에 의한 '집단 허구(Collective fiction)'가 유지됨으로써 화폐의 기능이 작동하는 것 이죠. 디지털 화폐가 등장하기 전까지 돈의 거래속도는 물건이나 화폐가 유통되는 속도와 똑같습니다. 즉 사람의 속도에 종속됩니다.
디지털 화폐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 대략 20년 전부터 입니다. 대다수 현대인들은 직장에서 화폐로 돈을 지급받지 않고 통장으로 입금받습니다. 이를 통해 간단하게 집세와 각족 관리비를 이체하고 세금도 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거래는 온라인상에서 0과 1의 기호로 바뀌어 이루어집니다. 과거에 사용되었던 돌이나 동전 같은 물건조차 필요 없습니다. 이제 물건이나 화폐가 유통되는 속도를 뛰어넘어 단 몇십 초 만에 지구 반대편으로 화폐를 송금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법정화폐에 종속된 디지털 화폐는 거대 기관에 의해 조정이 됩니다. 거대 기관들이 컴퓨터상에서 이루어지는 0과 1의 변화를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거대 기관은 자국 내의 거래는 대부분 가능하게 하지만 타국가의 화폐나 카드로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절차를 밟아야지 허용해줍니다. 타국가의 기관과 호환하기 위해서는 다시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자국 내에서 통용되는 대다수 카드는 해외에서 결제되지 않습니다. 이는 상충(Friction)이라고 불립니다. 타국가와 돈을 거래하기 위해서는 기관과 기관끼리 발생하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수료가 매우 비싸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의 거대 기관을 통해 거래를 해야 하는 이유는 여태까지의 디털화폐는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닌 은행과 카드 회사의 데이터베이스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빠르게 돈을 거래하고 싶다고 해도 이런 기관들이 보안상의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면 거래를 할 수 없습니다.
온라인상에서 똑같이 일어납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구글 드라이브, 카카오에 한 번에 자신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업로드하고 정리하고 싶어도 각 기관들이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일일이 개별적으로 저장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각 기관들끼리 '문'을 만들어두고 서로의 입장을 제한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재 통화의 거래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돈의 거래속도는 기관(은행, 카드사)의 속도에 종속됩니다. 또한 돈의 가치에 대한 합의는 거대 기관과 정부 측의 소수의 인원에 의해 컨트롤됩니다.
물건과 화폐, 법정화폐에 종속된 디지털 화폐에 이어서 새로운 돈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돈은 프로그램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통해 만들어지는 화폐는 기관과 정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관과 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거래가 불발되거나 가치가 사라지는 경우도 발생할 가능성이 극히 낮아지게 됩니다. 사람과 기관의 역할이 사라지기에 화폐의 흐름을 가로막는 '문'은 사라지게 됩니다.
이런 돈의 진화는 '암호화 화폐'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미 비트코인,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등의 인지도 있는 암호화 화폐는 실제 화폐와 똑같이 온라인상이나 오프라인상에서 거래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금융시스템으로 진화해 매매, 옵션, 합성, 파생과 같은 법정화폐로 투자할 수 있는 대다수의 금융투자상품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암호화 화폐는 암호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암호를 통해 정보를 보호하고 보안성을 높이며 정보의 출처를 검증합니다. 사실 이런 암호체계는 우리 실생활 전반에 이미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나 오프라인상에서 거래를 할 때 카드정보를 입력하기 위해서 보안 프로그램은 정보를 암호로 변화시키고 금융자료를 거래합니다. 암호화 화폐는 이런 거래방식을 기관 의존형 방식에서 모든 사람이 보안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킵니다.
비트코인을 거래하면 얍의 라이스톤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지분을 증명하게 됩니다. 즉 비트코인의 거래명세서는 비트코인을 소유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록됩니다. 이를 블록체인이라고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있기에 중앙 집중화된 사람이나 기관이 필요하지 않으며 개인들끼리의 연결성으로 보안성이 높아집니다. 어느 한 명의 보안을 뚫어 해킹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슬을 끊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은 매우 복잡한 암호 문제를 풀면 생산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생성될수록 암호 문제는 더욱 난이도가 증가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이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보안을 더욱 강화시킵니다. 이렇게 생성되는 암호화폐는 작업 증명(Proof of Work) 방식, 즉 채굴을 통해 생성되는 화폐입니다. 이미 2021년 현재는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작업 증명 방식에서 지분 증명(Proof of Stake)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차후 포스트에서 다루겠습니다.
암호화 화폐(Cryocryptocurrency)는 프로그램을 통해 집단 허구를 가장 효율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신개념 도구입니다. 합의를 통해 가치를 도출하기 위해서 거대 기관이 필요하지 않으며 보안성이 매우 높아 해킹의 위험도 현저히 낮습니다. 암호화 화폐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화폐의 일부분이며 암호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의 프로그램화폐가 등장하기 위한 첫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화폐는 우리의 삶을 인터넷과 같이 또 한 번 변화시킬 것입니다. 작게는 돈을 거래하는 방식, 지갑을 가지고 다니는 대신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변화에서 크게는 돈의 가치, 돈을 버는 방법, 금융자산에 대한 합의가 총체적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이제 돈의 속도는 기술의 속도와 똑같아졌습니다.
아직까지는 전 세계 경제는 대부분 법정화폐에 종속된 디지털 화폐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장점도 많지만 피혜점도 상당히 많습니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에 대한 합의는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컨트롤되며 일반인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점점 더 가난해지는 구조적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로 인해부의 격차는 극심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전 세계 금융자산은 2019년 기준 실물경제 총생산인 77조 9900억 달러를 한참 뛰어넘는 1000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는 2020년 코로나 위기로 더 극심하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금융자산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근미래에는 도저히 치솟는 물가에 대처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미래에 본격적으로 쓰일 프로그램 화폐(ex. 암호화폐)가 이 모든 것에 대처할 수는 없지만 돈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합의를 바꾸기 시작할 것은 분명합니다. 권력형 기관이 관여하지 않고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집단적 동의에 의해서 가치가 도출되므로 세상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이제 태동기를 넘어선 암호화 화폐는 우리가 돈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부터 바꾸어 나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시작점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지 않는다면, 은행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인해 부의 격차가 촉발된 것과 마찬가지로 부의 격차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게 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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